본문 로마서 5:1-8 · 설교 박경근 담임목사 · 2026년 6월 14일 주일예배
설교 요약
오늘 저는 로마서 5장 1절부터 8절 말씀을 본문으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먼저 한 가지 고백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우리가 지금 그 모습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는 않으십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시되,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 도구가 다름 아닌 고통이라는 것을, 저는 이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시고, 그 인내로 우리의 성품을 연단하시며, 마침내 그 안에서 소망을 품게 하십니다.
본문 3절의 “환난”이라는 단어는 본래 쥐어짜고, 비틀고, 짓누르고, 압박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약재를 짜내듯, 사방에서 우겨싸는 듯한 고통입니다. 이런 환난을 만나면 우리는 대개 낙심하고 슬퍼하며 피해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녀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런 반응이 아니라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즐거워하다”의 의미를, 월드컵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둔 순간 응원단이 춤추고 뛰며 기뻐하던 그 모습에 빗대어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이 단어에는 “자랑하다”라는 뜻도 있어, 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로 옮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습니다
환난 중에 기뻐하라고 말씀드리는 첫 번째 이유는, 환난이 인내를 낳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인내”는 “무엇 밑에서”라는 뜻과 “머무르다”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환경이나 관계라 할지라도 그 밑에서 견디며 머무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내입니다. 이 인내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오직 환난과 고통이 그것을 만들어 냅니다. “왕관을 쓴 자여, 그 무게를 견디라”는 말처럼, 어떤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견뎌야 할 무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부교역자 시절에는 설교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담임목사의 직분을 맡고 보니, 그 자리는 무게를 견디고 인내하는 자리였습니다. 22년 동안 이민 교회를 섬기며 제가 배운 것이 바로 그 직분이 주는 무게를 견디는 인내였습니다.
인내는 연단을 낳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인내가 연단을 낳기 때문입니다. “연단”은 본래 금속을 불 속에 넣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금은 순금이 아니라 불순물이 섞여 있기에, 뜨거운 용광로에 넣어 불순물을 벗겨낸 뒤에야 순금이 되고 “정품”이라는 도장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환난과 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 성품 안에 있는 인간적인 고집과 아집, 하나님 보시기에 불순한 것들이 벗겨져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제 너는 됐다” 하시며 합격의 도장을 찍어 주십니다.
저는 그 예로 욥의 고난을 나누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열 자녀가 한날한시에 죽는 참척을 당했으며,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 피고름이 터지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 했고, 위로한다며 찾아온 친구들은 도리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을 했으며, 욥기 23장 8절의 고백처럼 하나님조차 느껴지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그런 욥이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욥기 23장 10절의 고백에 있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며,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같이 되어 나오게 될 줄을 믿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저는 고통 자체가 결코 유쾌하거나 즐거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어떤 선한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하며, 언제나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목회하며 보니, 고난을 만났다고 해서 누구나 저절로 믿음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여겨 말씀 앞에 돌아오고 기도의 삶을 회복하며 주님을 붙드는 분들에게는, 그 고난이 시간이 걸려도 결국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남을 탓하며 원망하는 분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마치 조각가가 망치와 끌로 대리석을 쪼고 깎아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어 내듯, 하나님께서는 고난이라는 망치와 끌로 우리 삶의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깎아 아름다운 성품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권면드립니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불행은 선택이며,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성장과 성숙은 선택입니다. 지금 사방에서 우겨싸는 듯한 환난을 지나는 분이 계신다면, 그 고통을 인내라는 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의 성품을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말씀 앞에 돌아오며, 식어진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실 때, 그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까닭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연단을 낳으며 그 연단이 마침내 우리 가운데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