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9:15-30 · 설교 박경근 담임목사 · 2026년 7월 26일 주일예배
설교 요약
저는 오늘 창세기 29장 15절부터 30절 말씀을 본문으로 “칠년을 며칠 같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 “남자의 집은 아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역시 아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라고 믿고 삽니다. 결혼 생활이 늘 쉽지만은 않지만, 결혼은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결혼을 통해 위로받은 한 사람, 야곱이 등장합니다. 형 에서의 축복을 속임수로 가로챈 야곱은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라반이 품삯을 정해 보라고 하자, 야곱은 돈이 아니라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청하며 칠 년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신붓값이 은 삼십 개 수준이었는데, 야곱의 칠 년 노동을 값으로 환산하면 은 육십삼 개, 시세의 두 배가 넘습니다. 계산 빠른 야곱이 왜 이런 불리한 조건에 응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답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 29:20).
사랑은 수고를 가볍게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열다섯 시간의 비행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수고는 수고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전 3:22)라고 했습니다. 예수원을 세우신 대천덕 신부님은 “주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도 이번 휴가 중에 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를 더 사랑하게 해 주세요, 우리 성도님들을 더 사랑하게 해 주세요. 은퇴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목회가 아니라, 라헬을 사랑하여 칠 년을 며칠같이 여긴 야곱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목회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지금 하시는 일이 힘겹고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그 일을 사랑으로 감당하게 해 달라고, 즐거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할수록 그 일은 가벼워집니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드디어 칠 년이 차서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이 지난 다음 날 아침,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습니다. 야곱이 따지자 라반은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의 법이 아니라며, 레아를 위한 칠 일을 채우고 다시 칠 년을 섬기라고 합니다. 야곱은 그대로 하여 라헬을 아내로 맞고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습니다. 여기서 첫째 진리를 배웁니다. 인생은 언제나 우리의 뜻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딱 칠 년만 고생하자던 야곱의 계획은 십사 년이 되었고, 라반의 집에서 보낸 세월은 결국 이십 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오 년만 공부하고 선교사로 나가자던 저희 부부의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오 년만 섬기려던 LA의 교회를 십이 년 섬기고 떠났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계획은 세우되 지우개는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받아들일 때 비로소 평안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둘째, 우리는 대체로 성공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의 성품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첫 칠 년은 며칠같이 지나간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뒤의 세월은 달랐습니다. 야곱은 훗날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 고백했고, 라반은 그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손길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당해 보아야 당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라반에게 속아 본 야곱은 그제야 형 에서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번 휴가에 읽은 존 맥스웰 목사님의 책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진흙으로 태어나 진흙으로 죽는 사람, 대리석으로 태어났으나 진흙으로 죽는 사람, 그리고 진흙으로 태어났지만 대리석으로 죽는 사람입니다. 능력은 있는데 성품이 부족하면 엉성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높이 오를수록 흔들립니다. 혹 여러분 곁에 라반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그 과정을 통해 여러분을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속임수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인간의 속임수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원치 않게 아내가 된 레아는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라헬이 임신하지 못하는 동안 레아는 아들을 넷이나 낳았는데, 그 넷째 아들이 바로 유다입니다. 레아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 29:35) 하며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훗날 그 유다의 후손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인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임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아무리 악한 사람이 우리를 괴롭게 하여도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번 휴가에 저희 가족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녀왔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폭포를 보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나이아가라가 유명한 것은 사실 절벽 때문입니다. 절벽이 없었다면 그것은 그냥 강이지 폭포가 되지 못합니다. 물은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벽 같은 문제를 만났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 절벽이 축복이 됩니다. 야곱에게 혹과 같았던 레아에게서 유다를 보내시고 그 유다 지파에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너무 짧게만 보지 마십시오. 짧게 보니까 힘들고, 원망이 나오고, 문제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길게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도 반드시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일하신 선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심을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