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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담임목사 박경근
2026년 7월 12일 설교 | 두 사냥꾼 이야기 (창세기 25:19-34)

본문 창세기 25:19-34  ·  설교 박경근 담임목사  ·  2026년 7월 12일 주일예배

설교 요약

오늘 저는 창세기 25장 19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두 사냥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한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두 형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들짐승을 쫓아다닌 사냥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쫓아간 사냥꾼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가 무엇을 쫓아 살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기다리게 하셨는가

먼저 이 집안의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 자손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줄줄이 태어나야 정상인데,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아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만나 결혼했으나 20년 동안 자식이 없었습니다. 두 세대를 합해 45년 동안 그 집안에 태어난 아들은 겨우 세 사람뿐이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서 이삭과 리브가를 인간적으로는 임신이 불가능한 자리로 몰아가신 후에 기도로 잉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는 오직 은혜와 기적으로만 세워진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오늘이라도 주실 수 있는데 굳이 기다리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내 노력과 내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미국에 유학 와서 우리 미국 장로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꼭 9년이 걸렸고, 영주권은 10년 만에 받았으며, 모든 것이 갖추어져 첫 담임 목회지로 나가기까지는 12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의 구순이 넘으신 장로님께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전도사님, 어떤 분은 태평양 건너오는 비행기 안에서 안수 받고 목사로 내린다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은 다 쉽게 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왜 우리 가정만 안 될까 싶어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기 싫어서, 미워하셔서 미루신 시간이 아니라 저와 제 가정이 오직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훈련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분야든 의미 있는 열매를 맺으려면 만 시간, 곧 하루 세 시간씩 계산해도 10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케냐 속담에도 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계획한 일이 자꾸 늦어져 답답하고 속상한 분이 계십니까? 나만 뒤처진 것 같습니까? 그것을 나쁘게만 보지 마십시오. 지금 안 되는 그 일 속에 하나님의 더 크고 선하신 뜻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태중의 두 국민

이삭의 간절한 기도로 리브가가 마침내 임신했지만, 뜻하지 않은 문제가 또 찾아왔습니다. 태중의 두 아이가 서로 싸운 것입니다. 이 ‘싸우다’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두개골이 깨지다, 지팡이가 부러지다라는 뜻이니, 죽기까지 싸우는 격렬함이었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 리브가는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며 여호와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뜻밖의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여기서 큰 자는 에서요 어린 자는 야곱입니다. 저는 이것이 기도의 축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문제와 고통 때문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밖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같은 태에서 나왔지만 두 형제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먼저 나온 에서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그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익숙한 사냥꾼이요 들 사람이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며 화가 나면 그대로 터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라 장막에 거주하였습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생각은 많으나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계획적이고 계산적이며 치밀한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오는 고기를 좋아하여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아마 늘 곁에 머물던 아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

어느 날 에서가 사냥에서 기진맥진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때 야곱은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팥죽이라 옮겼지만 이는 우리가 아는 달달한 팥죽이 아니라, 유목민들이 기운을 차리기 위해 양고기나 염소 고기를 넣어 끓인 붉은 죽입니다. 형이 죽을 지경이라며 한 그릇을 청하는데 웬만한 동생이라면 어서 먹고 기운 차리라며 얼른 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죽을 등 뒤로 감추고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하고 요구했습니다. 에서가 팔겠다고 하니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맹세하라고, 오늘로 말하면 여기 서명하라고 다그친 뒤에야 비로소 떡과 죽을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34절은 에서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자는 부모의 유산을 두 배로 받았고, 아버지를 이어 가문을 대표할 권리를 가졌으며, 그 집안의 영적 계승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축복이 장자를 통해 그 가문으로 흘러가는 것, 그것이 장자권 안에 담긴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이 이것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그토록 장자권에 집착했을까요? 재산 욕심이었을까요? 이어지는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아닙니다. 훗날 에서를 다시 만났을 때 야곱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자기 소유가 넉넉하니 형에게 그 재산을 선물로 받으시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야곱의 관심은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그 답은 하나님께서 태중에 하신 약속에 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그 약속,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야곱은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축복으로 알아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보는 눈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을 만나든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보는 눈이 있는 것이 복입니다. 몇 해 전 제 아내가 어느 권사님께 가방 하나를 선물로 받았는데, 제가 보기에도 시장 가방 같고 디자인도 이상해서 둘이서 굿윌에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야드라는 프랑스 명품 가방이었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슷한 것이 중고로도 삼천 불이 넘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죄가 무엇입니까? 보는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에서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자의 권세를 주셨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방법이 잘못되었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복을 복으로 알아보는 눈만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 장자권

그렇다면 오늘 신약 시대의 장자권은 무엇입니까?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영적 장자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라고 하였습니다. 목회를 하며 여러분을 보니 믿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믿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지식으로 깨달아지는 것도, 노력해서 따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위에서 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오늘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야곱에게 흘렀던 축복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어제 저는 짧은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교도관으로 일하신 듯한 분의 글이었는데, 교도소에서 11년을 일하며 천오백 명을 만나고 내린 결론은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으로도, 교정으로도 타고난 죄성은 바뀌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주는 축복입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에서처럼 그 믿음의 가치를 아직 몰라보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야 다녀도 그만 안 다녀도 그만이고, 예배야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라 여기는 분이 계십니까? 잘 모르실 때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고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목사로 살면서 예수 믿고 산 삶을 후회한다는 분을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은 여러분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야곱이 형 앞에 나아가 당당히 요구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요구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도 그 믿음을 주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든지 자녀 삼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에서처럼 육신의 쾌락과 세상의 즐거움만 쫓다가 주신 장자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처럼 믿음을 쫓아가는 믿음의 사냥꾼이 되어 축복의 계승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그래서 남은 인생 팥죽 한 그릇과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참만족을 예수님 안에서 다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경근 목사

박경근 목사 (Rev. David Pak)

박경근 목사는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말씀 선포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서 전한 말씀을 이곳에서 설교 영상과 요약으로 다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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