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7:1-11 · 설교 박경근 담임목사 · 2026년 8월 9일 주일예배
설교 요약
오늘 저는 창세기 37장 1절부터 11절 말씀을 가지고 “꿈 꾸는 자 요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찰리 채플린이 한 말로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가정이 꼭 그렇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이것은 분명 비극입니다. 그러나 카메라를 줌 아웃해서 멀리 바라보면 이 이야기가 결국 희극으로 끝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편애가 낳은 미움
비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열일곱 살 요셉이 형들과 함께 양을 치면서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2절은 기록합니다. 여기서 “말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디바는 성경 다른 곳에서는 늘 거짓 보고, 허위 보고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했을 뿐 아니라 거기에 과장을 더하고 때로는 없는 말까지 붙여서 아버지 야곱에게 일러바쳤다는 뜻이 됩니다. 형들이 아버지 몰래 양을 잡아먹었다든지 양을 판 돈을 속였다든지, 아마 그런 일이 아니었을까 저는 짐작해 봅니다. 야단치는 아버지보다 일러바치는 요셉이 형들 눈에는 더 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름을 붓는 일을 아버지 야곱이 또 합니다. 아들이 열이면 열에게 똑같이 옷을 지어 입혀야 하는데,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 정이 더 갔고,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편애를 본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고 4절은 말합니다. 예전에 한 권사님이 저에게 아이들한테 꼭 똑같이 해 주라고 당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녀가 둘이라 가능했다고 하시더군요. 저희 집은 넷입니다. 부모 마음은 똑같이 해 주고 싶은데 살다 보면 그게 잘 안 되고, 아이들은 형이 먹을까 봐 동생이 먹을까 봐 과자며 음료를 여기저기 숨겨 둡니다. 그래도 우리는 똑같이 해 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누구는 칭찬하고 누구는 야단만 치면 자녀들은 서로 갈등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똑같이 칭찬해 주고 똑같이 사랑해 주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깨어진 가정에도 하나님이 계시면
왜 가장 친밀해야 할 가정에서 이런 상처가 생기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것을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가정부터 죄로 오염되었으니, 오염된 사람들이 만나 오염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깨어진 가정이라 할지라도 그 가정에 예수님이 계시면 소망이 있습니다. 시편 46편 5절은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든 가정이든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의 세 가지 특징
이 와중에 요셉이 형들에게 더 미움받는 일이 하나 더 생깁니다. 바로 꿈입니다. 첫 번째 꿈은 밭에서 요셉이 묶은 곡식단에게 형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고,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모양은 달라도 전하는 메시지는 같습니다. 형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며 그를 더욱 미워했고, 아버지 야곱도 요셉을 꾸짖었지만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의 특징 세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첫째, 꿈은 곧 사명입니다. 이 꿈은 창세기 42장 6절에서 요셉의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그 앞에 땅에 엎드려 절할 때 정확히 이루어집니다. 열일곱 살에 꾼 그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장차 이루고자 하셨던 사명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는 인생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 사명이 무엇일까 생각해 왔고, 시간이 갈수록 저에게 주신 사명은 설교, 곧 말씀을 전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밥을 짓듯이 이 말씀으로 밥을 지어 여러분을 배불리 먹이는 일,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소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고 남들 보기에 하찮아 보여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그리고 이 교회에 왜 보내셨는지 그 사명을 꼭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꿈이 클수록 고난도 큽니다. 지금 요셉은 열일곱 살 소년입니다. 앞으로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의 노예가 되고 아무 잘못 없이 감옥에 갇혀 십삼 년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습니다.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선택 훈련」이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보여 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문으로 들어가는지 정확히 알면 절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꿈이 없던 형들은 아버지 집에서 편안히 살았지만 꿈이 있던 요셉은 혼자 연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공짜는 없습니다. 맹자에도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에 어려움이 많으시다면 그 어려움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셋째, 그 어떤 누구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막을 수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비난도 받고 미움도 받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에게 더 미움받았고 아버지에게도 야단을 맞았으며, 애굽에서는 보디발의 아내 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요셉 안에 있던 꿈을 짓밟을 수는 있었어도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성 작가 게리 토마스는 무명 시절 선배 작가에게서 신인 작가는 아무도 책을 내주지 않는다는 온갖 부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대화를 우연히 들은 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이 일로 부르셨다면 반드시 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마치고 신학 공부를 하려 할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 할 때, 미국 장로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 할 때 주위에서 다들 말렸습니다. 그때 그 말들에 아멘 했다면 저는 아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에 기죽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안 되는 길이 아니라 되어 가는 길
요셉의 인생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입니다. 형들에게 미움받고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꿈을 꾼 다음부터 자꾸만 안 되는 길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안 되는 길이 아니라 점점 하나님의 꿈에 가까워지는 길이었다는 것을요. 여러분의 인생도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는 안 되는 것이 잘되는 길입니다. 오늘 눈을 들어 우리 가정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우리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잘되든 안 되든 내게 주신 그 사명을 오늘도 묵묵히 성실하게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