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2:22-32 · 설교 박경근 담임목사 · 2026년 8월 2일 주일예배
설교 요약
오늘 저는 창세기 32장 22절부터 32절 말씀을 본문으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여러분께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도 문득 외롭다고 느끼신 적이 있으십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철학자나 예술가 중에 인간이 외롭지 않다고 말한 이가 있느냐고, 사람은 외롭지 않은 척, 친구가 많은 척, 많은 것을 가진 척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은 평생 무신론자로 사시다가 노년에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세례를 받으신 뒤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 외로움의 자리가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 그분 자신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홀로 남았더니
야곱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모았던 재산과 가족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 에서가 군사 사백 명을 이끌고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민 오셔서 쌓아 오신 재산과 가정과 커리어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 자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잠이 오겠습니까. 그 밤에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가게 하고, 자기 소유도 다 건너보낸 뒤에 홀로 남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말씀드렸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위기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홀로 남는 것, 곧 고독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영성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고독이 그냥 외로운 것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기 위해 스스로 택한 외로움이 고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고독 속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평안할 때는 도무지 들을 수 없던 음성,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하시는 그 음성을 우리는 그 시간에 듣습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네 골방에 앉아 있으라, 그러면 그 골방이 네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수도자는 골방을 떠나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수도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산에 오르사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과 단둘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사실 목회자인 저에게도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성도님들과 함께 보내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지키려 애쓰는 것이 있습니다. 주중에 아무도 없는 이 예배당이나 목양실에서 시편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기에 가장 정직한 기도가 나오고,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과 지혜가 찾아옵니다. 그 시간이 저를 지키고 제 목회를 지켜 준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하루 단 십 분이라도 좋으니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반드시 만드시기 바랍니다. 집 안의 옷방도 좋고 차 안도 좋고 부엌도 좋습니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도 놓지 않은 손
홀로 남은 야곱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날이 새도록 씨름했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고, 야곱은 그때부터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관절이 어긋났는데도 야곱이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날이 새려 하니 그 사람이 가게 해 달라고 하자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붙들었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이 만남을 두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호세아 12장은 이분을 천사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구약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는 자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행하신 두 가지 일입니다. 첫째는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신 일입니다. 허리와 허벅지는 사람의 힘을 상징합니다. 이제까지 네 힘만 믿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 자아를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저는 이 장면을 읽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둘째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이름을 바꿔 주신 일입니다. 그 사람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고 야곱은 “야곱이니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라반의 집에서도 속고 속이며 씨름했고, 지금은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야곱은 평생 싸우는 자로 살았습니다. 내가 싸워야 하고 내가 빼앗아야 하고 내가 속여야 하고 내가 지켜야 하는 인생입니다. 내가 주인이 된 인생은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렸으니 내가 노력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 힘으로 견뎌야 합니다. 한 번은 이길 수 있어도 계속 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언제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문맥에 따라 하나님이 싸우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뜻을 지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 이름의 주어가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원이란 우리 인생의 주어가 바뀌는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주어였습니다. 내가 속이고 내가 빼앗고 내 힘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뀝니다.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내가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 싸워 주십니다. 이제는 일일이 따지고 억지로 지켜 내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변호자가 되어 주시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도 다 야곱 같은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이겨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늘 쫓기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인생의 주어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우리 가정의 주어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우리 자녀들의 삶도 부모인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브니엘에서 얻은 용기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뜻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야곱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전날 밤만 해도 그는 아내들과 여종들과 자녀들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맨 뒤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 창세기 33장 3절을 보면 자기를 죽이겠다고 달려오는 형 에서를 향해 맨 앞에 서서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권사님은 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이신데 평소에는 말수도 없고 조용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러 나가면 사람이 달라져서 공원에서도 병원에서도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그 힘은 큐티와 기도로 늘 하나님을 만나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겁이 없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도 두렵습니다. 다만 그 두려움이 그를 막지 못할 뿐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용기란 기도를 마친 후의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34편 4절은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하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용기가 필요하십니까. 무릎이 떨릴 때가 바로 무릎을 꿇을 때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다고 붙들었던 야곱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이고, 그 하나님 안에서 얻은 용기로 우리는 믿음으로 앞을 향해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이제 빼앗는 자, 속이는 자, 싸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