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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담임목사 박경근
2026년 8월 16일 설교 | 먼저 보내시는 하나님 (창세기 45:1-15)

본문 창세기 45:1-15  ·  설교 박경근 담임목사  ·  2026년 8월 16일 주일예배

설교 요약

오늘 저는 창세기 45장 1절에서 15절을 본문으로 “먼저 보내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흉년으로 곡식을 구하러 내려온 형들이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형들은 자기들 앞에 있는 애굽의 총리가 22년 전에 자기들이 팔아버린 동생이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형들을 바라보던 요셉은 시종들을 다 물리고, 오직 형들만 남은 자리에서 참았던 감정이 터져 통곡하며 자신을 밝힙니다. 그 우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애굽 사람들이 듣고 바로의 궁에까지 들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요셉의 눈물은 치유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물었습니다. 요셉의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을까요. 억울해서 흘린 눈물도 아니고, 화가 나서 흘린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용서의 눈물이었고 치료의 눈물이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은 그 고통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은 치료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합니다. 요셉이 형들 앞에서 목놓아 운 것은 용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의 상처가 이미 치유되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는 자가 받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나와 자주 우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자신을 밝히자 형들은 놀라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놀랐다”는 말은 전쟁터에 나간 군사가 느끼는 공포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다시는 볼 일 없다고 여겼던 동생이 자기들의 목숨줄을 쥔 애굽의 총리로 앞에 서 있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사람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진실하게 사십시오. 살아보니 사람은 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더군요. 제가 1년 전 이맘때 이 강단에서 여러분 앞에 첫 설교를 하러 왔을 때, 여러 선배 목사님들이 한결같이 섬기던 교회에는 알리지 말고 조용히 다녀오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나쁜 뜻이 아니라 혹시 잘 안 되면 목사도 교회도 힘들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아내는 아무리 기도해도 평안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에게 더 큰 배신감을 안겨 드릴 수 없었고, 섬기던 교회에서 할 만큼 했다는 마음과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사임하고,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치고 나가는데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셔서 동생이 제가 섬기던 리노의 교회에 다닌다고 하시더군요. 만약 제가 조용히 다녀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일로 저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사람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 그리고 금방 건너온 다리를 불사르지 말고 어떤 관계에서든 이왕이면 축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일어나는 일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자기 자신의 생각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것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22년이 지난 뒤 그 사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큰 구원으로 그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자기를 형들보다 먼저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목 그대로 먼저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해석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요셉은 더 이상 그 일에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저도 함께 사역하던 목사님을 축복하며 떠나보내고 나니, 부임한 지 아홉 달밖에 되지 않은 담임목사로서 막막하고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으로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 우리 가정을 이 교회로 보내셨구나. 지난주에 어느 식당에서 본 문구가 마음에 남습니다. No rain, no flowers. 비가 없으면 꽃도 피지 않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이왕이면 좋게 해석하십시오. 믿음으로 해석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요셉이 보여 준 용서의 세 가지 모습

이어지는 9절부터 11절까지에서 요셉은 용서가 무엇인지 웅변적으로 보여 줍니다. 첫째, 용서는 과거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옛일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오직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남았으니 아버지와 온 가족을 모시고 내려오라고, 자기가 책임지고 봉양하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역사를 잊으면 같은 역사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묶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요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둘째, 용서는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판 형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잠언 25장 21절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합니다. 먼저 축복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양보하고 한 번이라도 더 기도해 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셋째, 가장 좋은 복수는 여러분이 잘 사는 것입니다. 창세기 41장을 보면 요셉은 감옥에서 나와 총리가 되고 가정을 이룹니다. 첫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 지었는데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고난과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이고, 둘째 아들은 에브라임이라 지었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눈 녹듯 사라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믿음은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람을 보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그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과거에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받았든지,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드시든지 그것을 떠나보내시고 주 안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경근 목사

박경근 목사 (Rev. David Pak)

박경근 목사는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말씀 선포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서 전한 말씀을 이곳에서 설교 영상과 요약으로 다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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